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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ssmaker

lino / 옷을 짓는 아이 / 2008

재봉사 lino는 언제나 마음 가는 대로 재봉틀을 돌린다.

lino들은 모두 느긋해서 급한 일이라는 것이 없다.

시간이 넉넉하니 하나하나의 일이 정성스럽다.

여름옷을 지을 때는 먼저 여름 기분을 맛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예전에 갔던 바닷가에서 주워 온 모래를 재봉틀 옆에 두고, 여름 노래를 흥얼거리며 옷에 여름을 담는다. 아 참, 아래층 카페에 트로피컬 주스를 시켜야지.

아이 옷을 지을 때는 어릴 적 일기장을 펼쳐 놓고, 인형과 나무 블록을 늘어놓고 따뜻한 우유와 쿠키를 곁들인다.

교복을 지을 때는 안경을 쓰고 등을 곧게 펴고, 새 연필과 새 공책을 꺼낸다. 손수 만든 학생증도 갖고 싶고, 도시락 바구니에는 무엇을 넣을까.

드르륵드르륵, 드르르륵. 오늘도 재봉틀은 경쾌하게 달린다.

재봉틀 앞의 재봉사 lino
재봉사 lino, 2008년.

그런 식으로 즐겁게 옷을 짓던 어느 가을밤. 잠이 들고 얼마 지나, 이상한 꿈을 꾸었다. 누군가가 토끼 옷을 지어 달라며 찾아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흐릿해서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번쩍 눈이 떠졌다. 토끼 옷이란 뭘까? 그건 누구였을까?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근질근질근질근질, 아무래도 토끼 옷을 짓고 싶어졌다.

평소 같으면 방에 가죽을 깔고 당근을 들고 깡충깡충 뛰었겠지만 지금은 한밤중이다. 아래층 사람이 자고 있을지도 모르니 시끄럽게 굴 수는 없다.

그래서 토끼 무늬 옷이라도 입고, 엉덩이에 솜을 붙이고 재봉틀 앞에 앉았지만 드르륵드르륵…… 곧 재봉틀이 멈춘다.

무언가가 모자라다.

뭘까, 뭘까. 메모지에 토끼 그림을 그리며 생각한다. 당근 주스를 시키려 해도 벌써 한밤중이다.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둥그런 달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달은 lino들의 집을 어슴푸레 조용히 비추고 있다. 재봉사 lino가 시험 삼아 방의 불을 꺼 보니, 마침 달빛이 재봉틀을 비추고 있었다.

lino가 재봉틀을 경쾌하게 밟기 시작하자, 재봉틀에 반사된 빛이 반짝반짝 흩어지고 작은 별들이 반짝, 반짝 장단을 맞춰 주었다. lino는 마치 별들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